여행 이야기

함양힐링

정성연 2017. 1. 4. 08:37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 지안재와 지리산제일문이 서 있는 오도재의 풍광은 그야말로 덤. 힐링의 도시 경남 함양으로 떠난 이유였다.

정여창 선생 자란 선비의 고장  
도시 곳곳 지혜와 학문의 향기  

연 100만 명 발길 부르는 상림  
갈색 낙엽길 완보만 해도 힐링  

구불구불 지안재~오도재 도로  
직진만 강요받는 삶 돌아보게… 

■책 박물관 겸 공부방 고반재와 종림 스님
 

고반재 개관식이 열린 지난 3일 오후 경남 함양군 안의면 장자동 산자락에 300여 명의 내외 귀빈이 모였다. '함양군에 큰 선물을 준 것 같다'는 군수도 보이고, 국회에서 농성 중이던 국회의원도 달려왔으며, 가수 김수철 씨 등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고반재 내부 전경

개관식에 앞서 해인사 시절부터 종림 스님과 인연이 있던 송광사 주지 진화 스님이 불교의식을 거행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 복간본을 소장과 전시까지 하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보니 나름의 격식을 갖췄다.

1년여 만에 완공한 고반재는 '시경'에 나오는 '군자가 고반재간에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에서 따왔다고 했다. 불교의 지혜인 반야라고 해석할 수도 있댔다. 10여 명이 동시에 묵으며 공부 모임을 할 수 있는 도량으로 개방한다더니 과연 그 이름 그대로였다. 그동안 종림 스님이 고려대장경연구소에 자료실을 만들 요량으로 모은 다양한 불교 경전과 철학 서적, 불상, 비석 탁본도 품었다.

고반재 뒤로는 사찰을 닮은 전각 '천년지장'이 있다. 1000년 전 간행된 고려 초조대장경의 인쇄본이 봉안됐다. 국내 박물관과 미술관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으로 반출된 초조대장경의 인쇄본을 복원한 복간본 2040권을 소장 중이다.

종림 스님과는 밤이 이슥해서야 겨우 마주 앉았다. 서울 생활은 정리됐냐고 여쭸다. "아직 반반"이란다. 스님이 궁극적으로 잡고 있는 화두가 궁금했다. 공(空)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논리, 윤리, 과학 등 흔히 말하는 세상의 이치(理)를 벗어나, 이념이나 시대, 욕망 조차의 개입도 허락하지 않는,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 본성과 본질을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할 때만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으며, 그에 맞춰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보는 게, 스님 말씀처럼 간단한 것도 아니지만, 누구는 1의 관점에서, 누구는 2의 관점으로, 누구는 3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한쪽밖에 못 본다는 말씀은 얼핏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일두 정여창 선생과 남계서원 

고반재를 떠나 일두 정여창 선생 고택(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 186호·055-962-7077)이 위치한 개평 한옥마을(지곡면 개평길 50-13)로 향했다. 경북지방 한옥과는 다르게 담장이 낮고 마당이 넓은 게 건물 배치가 시원스러워서 훨씬 개방적이었다. 

남계서원과 사당.

일두홍보관(055-964-5800)에서 만난 배정경 문화관광해설사는 일두고택은 남도 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고택으로 솟을대문에 충효 정려를 다섯 번이나 받은 편액 5점이 걸려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사랑채 옆 곳간 일부를 개조해서 만든 찻집 '고택향기'(055-963-0770)도 인상적이다. 정여창 선생 18대 종손의 여동생인 정현영 씨가 마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김부각과 오미자차 등을 판다. 정 씨는 특히 개평마을 부녀회 회원들과 함께 전통 방식 그대로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자갈에 구워내는 '자갈한과'(010-3652-3963)도 만든다고 자랑했다.

일두의 흔적은 개암 강익이 그를 기려서 창건한 '남계서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99호·055-960-6114)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원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그 뒤로 풍영루가 정문을 겸해 서 있는데 누각에 오르면 드물게 보는 게 그림의 단청과 '목이 잘린' 황룡과 청룡 대들보가 있다.

게 그림에 대한 박행달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 재미있다. "학문은 앞으로만 전진하는 게 아니라 게처럼 옆으로 걷듯 반복 학습을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박 해설사는 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중에는 남계서원이 국내 두 번째 사액서원"이라면서 "남계서원은 규모는 작고 소박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의 모델이 될 만큼 상징적"이라고 덧붙였다.

■계절마다 매력을 달리하는 상림공원 

상림공원(천연기념물 제154호·함양읍 필봉산길 49·055-960-5756)을 찾았다. 하림공원은 개발 중이라고 했다. 상림 1,6㎞ 구간을 걷는 동안 이춘철 문화관광해설사가 좋은 말벗이 되어주었다.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걸었는데도 2시간이면 충분했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100만 명이 찾았다는 상림은 계절마다 다른 매력과 낭만을 품은 곳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지안재(오도재)

이 해설사는 "4월 말에서 5월 초는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이, 5월 말부터 6월 초엔 하얀 이팝나무와 창포의 향연, 6월 말껜 연꽃이 피기 시작해 7~10월은 수련 등 300여 종의 연못 수생식물이 장관을 이루고, 9월 중순은 온 상림 나무 아래를 빨갛게 물들이는 꽃무릇(석산) 천지가 되고, 가을로 접어들어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는 단풍이 절정을 이룬 뒤 11월 하순이면 낙엽이 지고, 겨울엔 경남에서도 드물게 눈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 된다"고 말했다. 

실물 그대로의 함양척화비, 상림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천년교, 함양읍성의 남문이 폐기될 상황에서 사재를 턴 송계 노덕영이 현재의 위치로 고스란히 옮겨왔다는 함화루, 고운 선생을 추모하는 사운정과 고운 선생의 숲 조성 전설이 깃든 금호미다리 등 곳곳에 숨은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한편 상림 안에는 함양을 빛낸 역사 인물 11명의 흉상을 세워 놓은 '역사인물공원'이 있고, 그 옆 선정비도 발걸음을 붙들었다. 선정비 중에는 유독 한 개가 눈길을 끌었는데 조선말기 탐관오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고부 군수 조병갑이 함양군수로 있으면서 세운 '사심 없는 선정'을 베풀었다는 내용의 것.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들이 철거를 요청했고, 고민을 거듭한 함양군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역사의 교훈"이라는 설명과 함께 조병갑 선정비 옆에 별도의 안내판을 세우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했다.  

■지안재를 거쳐 오도재에 오르다 

상림을 나와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대를 잡은 김에, 지안재와 오도재(휴천면 지리산가는길 635)를 들렀다. 구불구불 휘어진 도로를 내려다보면서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선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템포 쉬어가는 그 느낌으로 살아간다면, 세밑과 새해가 무어 다를까 싶었다. 아울러 종림 스님께서 숙제처럼 던져주신, '공'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흉내라도 내어볼 수 있진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이날 함양에서 만난 건, 풍경도 타인도 아닌, 바로 나였던 것이다.

경남 함양/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여행팁 
 
■묵을 곳과 먹을 것
 
 
경남 함양군 전체를 본다면 숙소는 이용하기 나름이다. 계곡 쪽은 당연히 펜션과 민박, 읍내는 모텔, 그리고 고택이 있는 지곡면에선 개평한옥마을(010-4569-7843), 일두고택(사진·010-6395-5111), 정일품농원(055-964-8945) 등에서 한옥 및 고택 체험이 가능하다.  
 
먹거리도 마찬가지. 함양군에서 선정한 함양곶감 등이 포함된 '함양8품'도 있고, 함양갈비탕이 들어 있는 '함양8미'도 있다.  
개평한옥마을에 들른다면 기름이 들어가지 않고 자갈에 구워내는 건강식 '자갈한과'를 맛보거나 함양군의 대표적인 가양주 '솔송주' 홍보관에 들러서 시음이나 구매를 할 수도 있다.  
 
상림공원이 있는 관광안내소 건너편 일대는 대형 음식점과 커피점이 몰려 있으며, 주차장 입구엔 관광객 편의를 위해 차와 커피, 커피콩빵 등을 2000~3000원대의 저렴한 가격대로 판매하는 함양군 푸드트럭 1호점인 '황금마차'도 성업 중이다.  
 
만에 하나 안의면에서 아침식사를 해야 할 경우라면 딱 한 곳 문을 여는 '미송 갈비탕·갈비찜'(055-964-0225)을 찾아가야 한다. 한 그릇에 1만 2000원 하는 이 집 갈비탕엔 고기도 많이 들어갈 뿐더러 국내산암소한우를 가마솥에 4시간을 고아서 나오는데 국물이 맑은 게 먹고 나면 오후까지 든든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함양시티투어와 문화관광해설사 
 
함양군청에서 운영 중인 문화관광해설사는 상림관광안내소와 일두홍보관, 남계서원안내소 등 4곳에 배치돼 있다. 함양군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무료. 
 
한편 오는 17일 실시될 '함양 시티투어' 12월 프로그램은 '군고구마·동치미 투어'로 오전 9시 30분 상림을 출발해 , 개평한옥마을(10:30)-휴천송전마을(12:00)-지리산 둘레길 걷기(금계마을~용유담)(14:00)-벽송사(15:30)-상림(17:00)으로 되돌아오는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송전마을 체험으로는 군고구마 구워 먹기, 민가음식 체험(장작불 가마솥밥), 다듬이 공연 관람, 마을투어 등이 있다. 점심 식비로 8000원이 든다. 문의 055-960-5163. 김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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