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묶을 때 쓰이는 밧줄은 필수품이었다. 농산물을 수확하여 옮길 때는 물론이고 산에서 나무 한 짐을 등에 지고 내려오려 해도 튼튼한 줄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출세를 하고 큰일을 하려면 ‘줄’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마삭줄이라 불리는 덩굴나무가 있다. ‘마삭(麻索)’이란 원래 삼으로 꼰 밧줄을 뜻하는 삼밧줄의 한자식 말이다. 마삭줄은 삼밧줄 같은 줄이 있는 덩굴나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마삭줄의 줄은 간단한 밧줄로 쓸 수는 있지만, 삼과 비교할 만큼 튼튼한 덩굴은 아니다. 다만 남부지방의 숲속에서 흔히 자라는 탓에 쉽게 만날 수 있는 덩굴나무로서 삼밧줄처럼 요긴하게 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마삭줄은 따뜻한 남부지방이 자람 터다. 요즈음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중부지방인 경북 남부까지 올라와 있다는 보고도 있다. 늘푸른 넓은잎나무이며, 상록수 숲에서 다른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바위나 산사태가 난 땅을 뒤덮기도 한다.
대체로 바위를 덮거나 땅바닥을 길 때는 작은 잎을 달고 꽃이 잘 피지 않는다. 반면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비교적 햇빛을 잘 받을 때는 잎도 크고 꽃도 잘 핀다. 잎은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로 기본적인 모양은 타원형이며, 표면에 광택이 있는 녹색이며, 환경에 따른 잎 모양의 변화가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크다. 때로는 같은 나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잎의 형태가 서로 다른 경우도 있다.
마삭줄이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방식은 비정한 자연계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도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하다. 짧은 공기뿌리를 키다리 큰 나무의 껍질에 조심스럽게 붙이면서 올라간다. 이런 방식은 자람의 장소를 아무런 대가 없이 빌려준 나무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휘감고 올라가면서 아낌없이 몸을 빌려준 나무를 되레 조여서 결국 숨 막혀 죽게 하는 등나무와 비교하면 마삭줄은 ‘신사 덩굴’이다. 또 높이 올라가는데도 절제가 있다. 원래 강한 햇빛을 좋아하지 않으니 꼭대기로 올라가 광합성 공간을 빼앗지 않는 것도 그의 마음씨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교적 잎이 많이 달리는 나무지만 줄기가 그렇게 굵지 않고, 나무를 잘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물관이 가늘고 수도 많지 않다. 어린잎은 가장자리에 털이 있다가 차츰 없어지며, 안으로 약간 휘는 감이 있다. 겨울에는 검붉은 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자람이 까다롭지 않으므로 아파트 베란다 등 실내에 심어도 좋다. 흰 꽃과 여러 가지 잎 모양을 감상할 수 있고 아무 곳에나 덩굴을 올릴 수 있다.
꽃은 늦봄 새 가지 끝에 다섯 장의 하얀 꽃잎이 완전히 뒤로 젖혀지고, 가장자리가 안으로 휘어진다. 아기 선풍기의 날개와 꼭 닮은 모습이다. 하얀 꽃은 시간이 지나면 노란빛으로 변하고 향기가 난다. 콩꼬투리처럼 생긴 열매는 9월쯤 익으면서 가운데로 갈라지고, 은빛 관모(冠毛)를 가진 씨가 나온다. 씨의 관모는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