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 열 채 주고 산 청자, 아궁이에서 건진 겸재 화첩
3·1운동 100년 맞아 DDP서 개막
"나라는 잃어도 문화재는 지켜야"
전쟁과 같은 간송의 문화재 수집
국보 6점, 보물 8점 등 60점 전시
걸작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나와
당시 이만원은 서울 장안에 쓸 만한 기와집 열 채를 살 수 있는 값이었다. 이 청자를 놓친 일본인 아마이케는 간송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그 물건값의 몇 배를 지불하겠소.” 그러자 간송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 천학매병보다 더 좋은 물건을 저한테 가져다주시고 이 매병을 본금에 가져가시지요. 저도 대가는 남만치 치를 용의가 있습니다.” 청자를 절대로 내줄 수 없다는 옹골찬 다짐이었다. 이 청자가 국보 68호, 고려 상감청자의 ‘백미’로 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다.
1년 뒤인 36년 간송은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또 한 번 일본인들을 놀라게 한다. 매물로 나온 조선 도자기의 대표 명품 백자(국보 294호)를 1만4580원이라는 거금을 불러 일본인 거상들을 물리치고 낙찰받은 것이다. 당시 명동 한복판에 자리한 경성미술구락부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매매기관으로, 합법적 문화재 반출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간송에게 이곳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매번 전쟁을 치르는 ‘최전선’이었다. 간송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듬해엔 영국인 수집가 ‘존 개스비’로부터 고려청자 20점(개스비 콜랙숀)을 인수했다. 서울의 기와집 400채를 사들일 수 있는 가격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간송이 지켜낸 이 청자와 백자, 개스비 콜렉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여는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다. 서울디자인재단(대표 최경란)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함께 여는 전시로, 국보 6점과 보물 8점 등 총 6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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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 히스토리’에 초점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전시에 나온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가리켜 “고려 상감 청자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에서 굽까지 내려오는 유려한 곡선, 화려하면서 정교한 문양이 탄성을 자아낸다”며 “요즘 도자 장인들도 고개를 저으며 이를 재현해내기 어려워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귀하기로는 백자(국보 294호)도 마찬가지다. 백 연구실장은 “이 화병은 조선 백자기술의 총 집약체”라며 “다른 백자에서 보기 드문 코발트색 난과 붉은 색, 갈색 꽃의 빼어난 발색을 눈여겨 보라”고 주문했다.
개스비 콜렉션을 인수한 사연도 인상적이다. 고려청자 수집가였던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간송은 일본으로 달려가 20점을 인수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충남 공주 일대 땅 만 마지기를 팔고 그 대가로 얻은 ‘우리 보물’이었다.
DDP에서의 마지막 전시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