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안전)하인리히 법치과 에멘탈치즈이론
정성연
2019. 6. 18. 15:24
다뉴브강은 다뉴브, 도나우, 두나브, 도나 등 이칭이 많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음악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 유명하다. 오스트리아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진 다음 슬픔을 딛고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는 곡을 만들라는 황제의 요청을 받고 작곡됐다고 한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흐르는 다뉴브강에서 선상 유람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뉴브강에서의 낭만을 잊지 못한다.
아름다운 추억만을 만들어주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크루즈 바이킹 시긴호가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빠르게 따라오다 추돌하면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자세한 사고 및 피해 확대 원인은 크루즈의 영상 및 통신 기록 등을 면밀히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영상자료 등을 토대로 보면 크루즈에 가장 큰 책임이 있어 보인다. 여기에 다양한 크고 작은 요인들이 더해지면서 피해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에 가장 대표적 이론인 하인리히 법칙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영국 학자 리즌이 제시하고 있는 ‘스위스 치즈 이론’이 있다. 스위스의 대표적 치즈인 에멘탈 치즈를 자르면 곳곳에 1㎝ 정도의 기공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치즈아이’로 불리는 이 구멍은 에멘탈 치즈가 숙성되는 중에 프로피온산 세균이 발효하고 내는 가스가 치즈 안에 갇혀서 생긴 것이다. 스위스 치즈 이론은 사고를 유발하는 결함(구멍)들이 항상 잠재해 있는데, 이 결함들이 한꺼번에 나타날 때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사고 오래전부터 사고 발생과 관련한 전조가 있지만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안전장치는 완벽하지 못해 구멍이 우연히 일직선이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구멍은 크루즈 선박 ‘바이킹 시긴’에 있다. 정확한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바이킹 시긴의 과실이 도드라진다. 추월 운항을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교신도 하지 않고 유람선을 두 번 들이박은 게 직접적인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 잠깐 후진했다가 물에 빠진 피해자를 구하지 않고 그냥 내달렸다는 뺑소니 의혹도 받는다. 두 번째로는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관광 상품을 운용했다는 것이다. 멀리 외국까지 관광 온 이들에게 관광코스를 취소하거나 변경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해야 할 역할을 다했는지 의문이다. 저가 경쟁에 내몰린 여행사가 돈을 맞추고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노후 선박을 계약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고 유람선이 70년이 된 낡은 배라는 것도 놀랍지만, 헝가리에 노후 선박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좁은 강에 수많은 유람선과 대형 크루즈선이 뒤섞여 운항한 탓도 커 보인다. 부다페스트의 ‘관광산업 과열’도 한몫한 듯하다.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백 척의 유람선이 매일 밤 정상 운항하고 있다. 사고를 낸 것과 비슷한 크루즈선의 선원들은 많게는 주당 95시간 ‘노예노동’을 한다고 한다. 구명조끼와 구명보트가 비치되지 않은 점도 지적되고 있다. 해당 선사의 안전 관리에 허점이 있었고, 인재(人災)라는 현지 보도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어떤가. 세월호 사고 이후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개선돼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다양한 배들이 관광·수송·레저용으로 수없이 이용되고 있지만 사전 안전 교육이나 사전 구명조끼 착용 같은 예방 활동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구명조끼는 생명조끼다. 사고 후 불과 수초, 수분 만에 배가 물속으로 잠기는 상황에서 구명조끼를 찾아 입고 탈출하는 건 쉽지 않다. 승선과 동시에 구명조끼를 착용하거나 휴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형식적인 교육과 관행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조치들이 선행돼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뒤 해결하는 뒷북 대책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는 대응 시스템과 매뉴얼을 구비하는 것이 필수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1984&code=11171348&cp=nv
아름다운 추억만을 만들어주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크루즈 바이킹 시긴호가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빠르게 따라오다 추돌하면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자세한 사고 및 피해 확대 원인은 크루즈의 영상 및 통신 기록 등을 면밀히 분석해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영상자료 등을 토대로 보면 크루즈에 가장 큰 책임이 있어 보인다. 여기에 다양한 크고 작은 요인들이 더해지면서 피해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안전에 가장 대표적 이론인 하인리히 법칙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영국 학자 리즌이 제시하고 있는 ‘스위스 치즈 이론’이 있다. 스위스의 대표적 치즈인 에멘탈 치즈를 자르면 곳곳에 1㎝ 정도의 기공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치즈아이’로 불리는 이 구멍은 에멘탈 치즈가 숙성되는 중에 프로피온산 세균이 발효하고 내는 가스가 치즈 안에 갇혀서 생긴 것이다. 스위스 치즈 이론은 사고를 유발하는 결함(구멍)들이 항상 잠재해 있는데, 이 결함들이 한꺼번에 나타날 때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사고 오래전부터 사고 발생과 관련한 전조가 있지만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안전장치는 완벽하지 못해 구멍이 우연히 일직선이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구멍은 크루즈 선박 ‘바이킹 시긴’에 있다. 정확한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바이킹 시긴의 과실이 도드라진다. 추월 운항을 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교신도 하지 않고 유람선을 두 번 들이박은 게 직접적인 사고 원인으로 추정된다. 잠깐 후진했다가 물에 빠진 피해자를 구하지 않고 그냥 내달렸다는 뺑소니 의혹도 받는다. 두 번째로는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관광 상품을 운용했다는 것이다. 멀리 외국까지 관광 온 이들에게 관광코스를 취소하거나 변경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해야 할 역할을 다했는지 의문이다. 저가 경쟁에 내몰린 여행사가 돈을 맞추고 조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노후 선박을 계약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고 유람선이 70년이 된 낡은 배라는 것도 놀랍지만, 헝가리에 노후 선박을 규제하는 법이 없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좁은 강에 수많은 유람선과 대형 크루즈선이 뒤섞여 운항한 탓도 커 보인다. 부다페스트의 ‘관광산업 과열’도 한몫한 듯하다.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백 척의 유람선이 매일 밤 정상 운항하고 있다. 사고를 낸 것과 비슷한 크루즈선의 선원들은 많게는 주당 95시간 ‘노예노동’을 한다고 한다. 구명조끼와 구명보트가 비치되지 않은 점도 지적되고 있다. 해당 선사의 안전 관리에 허점이 있었고, 인재(人災)라는 현지 보도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어떤가. 세월호 사고 이후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개선돼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다양한 배들이 관광·수송·레저용으로 수없이 이용되고 있지만 사전 안전 교육이나 사전 구명조끼 착용 같은 예방 활동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구명조끼는 생명조끼다. 사고 후 불과 수초, 수분 만에 배가 물속으로 잠기는 상황에서 구명조끼를 찾아 입고 탈출하는 건 쉽지 않다. 승선과 동시에 구명조끼를 착용하거나 휴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형식적인 교육과 관행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조치들이 선행돼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뒤 해결하는 뒷북 대책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는 대응 시스템과 매뉴얼을 구비하는 것이 필수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1984&code=11171348&cp=nv